산채기 [Version 1.0 ]   [부제 : 쌍치]

몇년전의 일이다. 
오랜동지는 의기투합하여 순창군 쌍치면으로 지명수배자를 체포하기로 결의하였다. 
철수, 기찬, 그리고 연길과 나는 '돌격 앞으로'를 선언하고 보무도 당당히 진격했다. 

새벽4시, 
동지들은 여명을 가르며 삭풍이는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속에서 화이팅을 왜치면서 결의를 다지도 또 다졌다. 
이를 두고 동지들은 금석맹약이라고 부른다. 

임전무퇴의 기개는 언제가지 계속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침묵속에서 무심히 흐르는 세월은 나른한 졸음을 불러와 장한몽에 빠지게 한다. 
동지들을 의식하면서 철수는 조용히 합장하며 반야심경을 외운다. 

'色不異空(색불이공), 空不異色(공불이색),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생), 受想行識(수상행식), 亦復如是(역부여시)' 

해외유학파인 연길이는 경건한 심정이 되여 나직히 외친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tale. 
Told by, an idis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주역: 세익스피어 비극중의 하나인 맥베스에 나오는 독백) 

이에 놀난 기찬이는 잠에서 깨여나, 지지 않으려는 듯 기도한다. 
'주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저는 주의 종입니다. 주의 마음대로 하소소' 

토착종교만 빠진 느낌이다. 싯낌굿을 할까? 내림굿을 할까? 
도당굿이라도 해야 겠다. 

산채하려가는 마음은 이처럼 순결하고 고결한 천사들의 합창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나? 그래야 중투를 한다는 것이다. 
보시를 하여야 한다나? 그래야 단엽을 한다는 것이다. 

경건한 마음이 되여야 한다나? 그래야 명품을 한다는 것이다. 
산신령님께 빌여야 한다나? 그래야 진짜배기를 한다는 것이다. 
시산제를 하여야 한다나? 그래야 한 건을 한다는 것이다. 

산채지에서 목욕재개하고 신선이 된 용사들은 진격을 개시했다. 
돌격 앞으로 ! 
완만한 능선은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 부드럽게 애무하며 동지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30분 후에 상황은 돌변했다. 
조리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쌍치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토끼 새끼도 빠져나갈 수 없는 조릿대 군락지! 
천연의 원시림이고, 밀림속의 정글이다. 

과연 쌍치였다. '정말로 쌍치의 '쌍'이네! 누군가가 왜쳤다. 
도처에 가시를 세우고 피를 부르는 망과나무는 용사들의 기를 꺾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유랑의 길, 인생의 길'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작전상 후퇴! 
후퇴 명령에도 앞길은 캄캄하다. 사면초가가 실감나는 상황이다. 

우회작전! 
우회를 해도 조릿대는 강성대국을 형성하며 인민들을 괴롭힌다. 

고육지책! 원위치! 
어쩔수 없는 상황속에서 리더는 절규를 토해낸다. 
그러나 상황을 알 수 없는 미궁속은 정말로 마의 삼각지대이다. 

처녀지의 함정이다. 순결한 처녀가 앙탈을 부린다. 
아니면, 속내를 간파한 신령님께서 자각을 위한 질책을 하시는 걸까? 

좌충우돌! 복궐복! 
찌...ㄱ, 찌...ㄱ, 찌...ㄱ, 찌...ㄱ,  
청바지가 맥없이 나간다. 얼굴도 맥없이 나간다. 마음도 맥없이 나간다. 
떨어지는 땀방울에 얼굴은 그야말로 피범벅이다. 

'산신령님이 노하셨지.' 
'영어가 왜나오냐.' 
'토착언어를 구사해야지, 산신령님께서 알아듣지 못하신 갑다.' 

푸념 속에서, 아....뿔싸! 
한 친구가 안보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낙오가 된 것일까? 눈앞이 깜깜하고 아찔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왜쳤다. 
'아........ 저기 있네. '휴... 사람간장 녹이네.' 리더는 통곡을 한다. 
앞쪽의 그림에서는 사람은 안보이고 조릿대를 내리치는 지팡이만 보인다. 
이 처럼 완강한 조릿대는 처음이다. 

' 야.... 이거 조릿대가 맞냐?' 
'변이종 조릿대 인가봐? 변이종....' 
'변이종, 좋아하니까? 소원풀이하라고 하는 갑다' 
'왜 이렇게 크냐? 조릿대가.....' 

이 때였다. 
바위 한개가 구르는 모습이 보인다. 

'야... 저거 바위냐? 뭐냐? 잘 안보이는데...' 
'어디 어디' '어디 말이야' '저기 저 큰 소나무 밑, 바위 아래...' 
'어디.. 어디..' 
'아니 형... 저건, 저건 ......' 

그 때 였다. 
옆의 동지가 탄식하듯 왜쳤다. 
' 아니 저거 철수 형 아니여...일 났네' 
' 아니? 야 ... 일어섰는데 ! 
'괜찮은가? 저거 다친거 아냐?' 

'환장하겠네. 철수형이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네.' 
' 야... 지금이 보통상황이냐, 특수상황이다. 특수상황!' 

불화에 화답하듯 숨가뿐 목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형.......... 형...............' 
숨이찬 철수의 목소리린데, 톤이 이상하다. 
말을 하지 못하고 '형'만을 찾는다. 

'야... 어디 다쳤냐! 어디 다쳤어. 괜찮냐? 괜찮아?' 

그 와 동시에 비호처럼 날아가는 동지들, 목숨을 건 동지애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떳다! 떳다! 독수리 삼형제! 
동지는 독수리 처럼 날렵한 선회를 시작하며 바위사이에서 곡예를 벌인다. 

한참의 순간이 지나고 선회하는 독수리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도 '형... 형...'하고 말들을 하지 못한다. 

'야.... 너희들 지금 동맹파업하냐? 동맹파업?......' 
하며, 돌아온 독수리들을 본 순간! 

눈앞에 전개되는 백설의 순수, 그것은 초순수 였다. 
단아하고 긴장된 여의설. 
앙징맞고 청아한 처녀꽃대의 수줍음. 

홍조를 띤듯 아닌듯한 신비로운 색감. 
부끄러운듯 살포시 고개숙인 화경. 
유연한 곡선을 허공속에 그리며 나풀대는 나신!

길게 꼬리를 물며 화답하는 바람소리! 
코끝을 간지럽히는 미향의 유혹. 
나약한듯 수줍은듯, 단정한 봉심! 

살갗을 물들이는 투명한 날개무늬!
가냘픈 목을 뽑고 영혼속에 솟아난듯, 
나신은 순결을 증명하며 우리 앞에 선 여인! 
그것은 환생한 여인이였다! 

그렇게 정지된 시간은 숨죽이며 지나갔다. 

이래서 군자는 난을 겯에 두며 사랑 하였는가 보다. 
이래서 시인 묵객은 난을 치며 천년의 세월을 지새웠는가 보다. 
이래서 풍류객은 절묘한 도를 난에서 찾았나 보다. 

이래서 선비는 절개와 기개를 보았나 보다. 
이래서 본인은 말했다. 삼의일발에 열반한 고승을 보았다고.... 

수행하며 탁발하던 스님들이 열반한 산과 들에 그 육신을 딛고 난들이 피여나기 시작했다. 
바로 열반한 그 곳에서..... 

성현군자께서 소천하신 바로 그곳에서 그 육신을 먹고 난들이 피여나기 시작했다. 
소천하신 바로 그 곳에서.... 

영겁의 한을 품고 요절한 여인들을 따사롭게 품은 대지에 난들이 피여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여인들을 품은 그 곳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탄식하며 산화한 호국영령들과 순국선열들의 뜻이 묻힌 그곳에서 부활한 난들이 피여나기 시작했다. 
그 뜻이 묻힌 그 곳에서....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전율에 떨며 난꽃을 뚤어져라 처다 보았다. 
그곳에서 미소짓는 스님들과 성현군자, 여인들, 호국영령들...... 

앞에 모시고 삼배를 드리자,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하셨다. 

'모든 지은 법이여!'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2003. 	민 병 만[들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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